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들의 취미 (문단 편집) ==== [[조선]] ~ [[대한제국]] ==== * [[이성계|태조]] * 국궁 : 활쏘기를 매우 즐겼을 뿐 아니라 실력도 뛰어나서 가히 신궁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유명하다. * 사냥 * 격구: 주로 귀의군 [[왕우(고려)|왕우]], 찬성사 유만수와 격구를 즐겼다. * 꽃 가꾸기 * [[정종(조선)|정종]] * 격구 * 여행: 태종과 같이 여행을 자주 갔다. * [[사냥]] * [[태종(조선)|태종]] * 사냥 * 여행: 퇴위 후 형 정종과 같이 전국 곳곳을 여행 갔다. * [[세종대왕]] * [[독서]]: 세종은 일생동안 공부와 독서에 미쳐 살았는데, 특히 [[자치통감]]을 즐겨 읽어서 몸소 주석서까지 만들 정도였으며 [[고려사]] 편찬 작업에도 깊이 관여하였다. * 작곡 * 타구: 격구와 비슷한 채를 사용하지만 말을 타고 하는 격렬한 방식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즐겨하는 [[게이트볼]]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한다. 사실 세종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싫어했고 고기를 좋아하다 보니 덩치가 크고 살이 쪄서 과격하게 움직이는 격구는 무리였다. * [[문종(조선)|문종]] * 군사 연구: 문종이라는 시호에 맞지 않게 무기 및 전술 개량에 많이 공헌했다. [[화차(무기)|아예 직접 무기를 설계했을 정도.]] * 공부 * 국궁 * 서예 * 천문 관측: 문종의 기상 예측은 매우 정확해서 세종이 문종에게 그날의 일기를 자주 물었다고 한다. 그 때문일까? 문종은 나중에 직접 [[측우기]]를 설계했다. * [[세조(조선)|세조]] * 음주, 신하들과 술파티: 술자리에서 손님들은 전부 기절했는데 본인과 백부 [[양녕대군]]만 멀쩡했다는 기록이 있다. 그 덕분에 백부와 함께 [[주당]]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. * 국궁 * 사냥 * [[성종(조선)|성종]] * 매사냥 * 시: 신하들이 지나치게 난리를 쳐서 시를 쓰진 못하고 읽기만 했다. * 애완동물: 낙타를 들여다 키웠다는 기록도 있고, 연산군이 손을 핥았다며 자신이 키우던 사슴을 걷어차자 크게 역정을 냈다. * [[연산군]] * [[사냥]]: 역대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도 제일가는 사냥 매니아였다. 사냥을 즐기기 위해 민가와 전답을 밀어 버릴 정도였는데, 그 부작용 때문에 연산군 폐위 이후에 즉위한 조선의 왕들은 사냥을 나갈 때 마다 신하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.[* 즉위 후 제일 먼저 죽인 생물이 선왕 성종이 키우던 사슴이었다.] * 주색 * [[처용가|춤]]: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연산군이 처용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자 이를 지켜보던 흥청 기녀들이 눈물을 참지 못해 궁궐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. * 시: 문학적인 소양이 뛰어나서 시 짓기를 즐겼으며 덕분에 짧은 생애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. * [[명종(조선)|명종]] * 내시 괴롭히기 * [[선조(조선)|선조]] * [[서예]]: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인정받아서 [[임진왜란]] 때 지원 온 [[명나라]] 장수들도 선조의 글씨를 탐냈을 정도였다. 본인도 자기 [[서예]]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. 또한 선조의 계비 [[인목왕후]]와 딸 [[정명공주]]도 서예에 뛰어났다. * [[광해군]] * 궁궐 짓기: 서울의 5대 궁궐 중 3개인 [[창덕궁]], [[창경궁]], [[경희궁]]이 광해군의 명으로 지어졌고 지금은 없어진 [[인경궁]]도 지었다. * 미식 : 음식에 특히 까다로웠으며, [[잡채]]를 특히 즐겼다. 이충은 잡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광해군의 총애를 얻어 호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다. * [[효종(조선)|효종]] * 무예 * [[현종(조선)|현종]] * [[온천]]욕: 사실 현종의 온천욕은 취미라기보다는 고질적인 피부병 때문이었다. 현종은 온천행을 다니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한다. * [[숙종(조선)|숙종]] * 서화 수집 * [[고양이]] 사육: 금묘(金猫)를 아꼈다는 일화가 [[김시민]]의 《동포집》에 나온다. * [[영조]] * 독서: 대체로 공부벌레가 되기를 강요받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학식을 자랑했다. 나이가 들어서는 연륜에 방대한 지식까지 더해져서 말싸움으로는 당할 이가 없어졌다. * [[경연]]: 조선시대의 왕들은 나이가 들어서는 경연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으나, 영조는 늙어서도 오히려 경연 자리에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며 경연관들을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. * 소설: 영조는 꼬장꼬장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소설 읽는 것을 즐겼는데, 영조는 민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소설을 탐독했던 것 같다. 영조의 회고에 따르면, 어릴 적에 삼국연의를 읽던 중 관우가 맥성에서 사망하는 대목에 이르자 한 부녀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. 그 외에도 신하들과 문답을 나눌 때에도 서한연의, 동한연의, 삼국연의 등의 소설의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고, 신하들에게 병에 걸렸을 때에는 가만히 누워서 잠만 자기 보다는 차라리 소설이라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.[* 도리어 개혁군주로 손꼽히는 영조의 손자 정조야말로 성리학 원리주의와 복고주의를 신봉하여 문체반정을 통해 옛날의 글쓰기 방식과 다른 소설류 등을 탄압하였다.] * [[정조(조선)|정조]] * 독서 * [[경연]]: 할아버지 [[영조]]보다 한 술 더 떴는데, 경연관 뿐만 아니라 조정 대신들까지 끌고와서 직접 강의를 했다. * 그림 * 음주: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비롯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평생을 짓눌려 산 후유증이었는지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희대의 술꾼이었다. 그 자신도 술을 매우 많이 마셨지만, 연회에 참석한 신하들에게도 습관적인 [[술 강요]]를 일삼았다.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[[정약용]]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, 정조가 거대한 필통에 술을 따라 건네주는 통해 속으로 나는 죽었다고 복창을 했다고 한다. * 흡연 * 무예: 활 실력은 태조 이성계 이래로 조선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명사수였고, [[협도]] 등의 [[크고 아름다운]] 무기를 잘 다뤘다고 한다. * [[헌종(조선)|헌종]] * [[서화]], [[인장]] 제작 및 수집: 그 덕에 헌종의 인장 컬렉션이 한데 모여 [[보소당인존]]이 편찬되었고 인장 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. *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 * [[커피]] 음용: [[김홍륙 독다 사건]]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피 맛의 미묘한 변화까지 인지할 정도. * [[국궁]]: 황학정을 건립하였다. * [[당구]]: [[선교사]]에게 배워 즐겨 쳤다고 한다. * [[얼리 어답터]]: [[구한말]]의 근대화 열풍을 감안하더라도 동양권 군주들 중에서 서양 문물을 상당히 빨리 즐겼다.[* 당장 일본만 해도 자동차를 탄 최초의 군주는 [[다이쇼 덴노]]이다.] [[대한제국]]의 재정 문제로 비판받긴 하지만. * [[순종(대한제국)|순종]] * 독서 * [[족보|보학]]: 배알하는 대신들이 친가·외가·처가의 누구와 몇 촌인지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. * 당구: 재위 중에는 옥돌장(玉突場, 당구장)에서 일본인 선수의 당구를 관람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있으며, [[이왕]]으로 물러난 뒤에는 당구에 흥미가 있어 당구장에 매일 나온다는 [[매일신보]] 기사가 있다. * 시계 수집: 소장품 중에 [[바쉐론 콘스탄틴]]의 회중시계가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